대구·경북 화섬직물 산지 위기 대응,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혁신의지 부재·리더십 공백·거버넌스 붕괴 ‘삼중고’ 업계 자성해야
대구·경북 화섬직물 산지가 심각한 복합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제조기반 전반에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잇따라 이탈하고 있으며, 섬유패션 밸류체인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면서 산업계 전체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미·중 관세 분쟁 및 미국·이란 전쟁을 비롯한 글로벌 무역 환경의 악화를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업계 내부에서는 이보다 더 뿌리 깊은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십 년간 누적된 관례주의와 자구 노력의 부재, 그리고 산업을 이끌어야 할 리더십의 공백이 오늘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소모전이 기회 막는다. 각자도생으로 내몰리는 업계
위기가 깊어질수록 업계의 대응은 오히려 분산되는 양상이다.
산업계가 당면한 위기를 공동으로 돌파하는 전선은 형성되지 못하고, 기업과 단체 모두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분열의 배경에 고질적인 내부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랫동안 반복돼 온 불필요한 소모전이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차단하는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섬유패션 밸류-체인 전반의 생태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업종별 기관과 단체들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칠 뿐 실질적인 자구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화섬직물 소재 산지가 다시 살아나려면 ‘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전제조건’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수십 년간 이어온 전통과 관례주의, 패배주의에 발목이 잡혀 위기 대응 역량 자체가 고갈된 것이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회전문 인사’에 ‘거수기 이사회’ 리더십 불신 팽배
업계가 지목하는 문제의 핵심에는 기관·단체 리더십의 부재가 있다.
산업의 변화를 읽고 재도약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기관장들이 오히려 개인의 명예와 권한 유지에 더 집중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을 산업 전체보다 앞세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지도자를 선임 과정의 문제도 심각하다.
기관·단체장을 뽑는 절차에서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 소위 ‘회전문 인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 전반에 새로운 혈기와 혁신적 시각을 불어넣어야 할 자리에 특정 인물들이 순환 배치되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변화의 동력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대한 불신도 크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산업 발전을 위한 독립적 판단을 내리는 본래 기능을 잃고, 사실상 기관장의 결정에 손을 들어주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트림별 기관·단체의 이사진 상당수가 여러 기관을 동시에 겸직하고 있지만, 핵심 현안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실행을 주도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위기 대응 ‘컨트롤 타워’ 없다. 외형만 남은 대구경북 섬유 조직
산지 전체의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할 컨트롤 타워가 실종됐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각 기관과 단체가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위기 대응을 총괄 조율하는 구심점 자체가 사라진 상태다.
대구경북은 전국에서 섬유 관련 기관·단체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그러나 외형적 규모와 달리, 실질적인 역할 수행 능력과 위기 대응 기능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많은 조직이 존재하지만, 정작 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헤쳐나갈 통합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외부 환경 탓 멈추고, 내부부터 바꿔야, 세대교체 요구 거세져
업계 안팎에서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자성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섬직물 산지의 재도약은 대외 여건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산업 내부의 혁신 의지와 투명한 거버넌스를 새롭게 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개인의 명예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보다 산업 전체의 동반성장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최우선에 두고 헌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이 이사와 기관장 자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1세대 원로 섬유인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관례와 기득권에서 벗어나, 산업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결단을 내리느냐가 결국 대구경북 화섬직물 산지의 운명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김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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